알쓸잡학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민지설 2023. 7. 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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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친언니집에 놀러 갔다가 빌려온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책 내용 속에 흥미로운 사람이 나와서 알아보았다.
그의 이름,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세 사람의 이름이 아닌 한 사람의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로 쓴다고 한다.

 

그리스인의 이름 짓기 문화
이름을 여러 개 갖는 것은 그리스 문화이며, 가족 구성원을 기리거나 신화 및 국가의 문화유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경의의 표현, 미래 세대에 영감을 주기 위함 등 이름의 힘에 대한 믿음에서 반영된 전통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오나시스(Onassis)는 세계적인 선박왕이자 석유왕으로 세계 최대의 민간 소유 선박선을 보유한 그리스의 해운 거물이다.
해운 재벌의 딸과 결혼했고, 오페라 가수인 마리아 칼라스와 오랜 내연관계를 유지했으며,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와의 재혼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다.
키도 작고 못생겼다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인지 남겨진 사진이 많지는 않다.

 

부를 축척하는 과정

오나시스(Onassis)1906120, 터키 스미르나(지금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났다.
1922년 스미르나 대재앙의 여파로 가족과 그리스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담배 상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19239, 17세의 오나시스는 그 당시 지하철이 다니는 화려한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간다.
그의 수중에는 단돈 몇십 불밖에 없었지만,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면서 매주 토요일이면 주머니를 털어 최고급 정장을 차려입고 부자들만 가는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부자들이 생각하는 것, 부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배우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나시스의 행동에 호기심을 보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그라코리스라는 선박회사를 경영하던 코스타 그레초라는 그리스인 재벌가였다. 오나시스의 운명은 그렇게 바뀌게 된다.
1931년, 2차대전 후 필요 없게 된 군용 중고 유조선을 헐값에 사서 수리해 되팔아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1938년, 사우디와 원유 수송권을 독점 계약하여 벼락부자 반영에 오르게 된다.
1950~60년대에 광대한 해운 제국을 건설하여 선박왕, 석유왕의 타이틀과 함께 세계적으로 부유한 사업가가 된다.

가족과 여자관계

1946년 오나시스는 40세의 나이로 결혼한다. 상대는 선박업계 거물의 딸 아티나 리바노스(Athina Livanos)인데 결혼 당시 그녀 나이 17세였다. 사이에 알렉산더(1948~1973)와 크리스티나(1950~1988)라는 두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1960년에 오나시스의 외도로 인해 파경에 이르는데, 외도 상대는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여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968년 오나시스는 62세의 나이에 재혼한다. 상대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이다. 하지만, 오나시스의 딸인 크리스티나는 새엄마를 인정하지 않았고, 재클린을 표면적으로 싫어했다. 1973년 오빠 알렉산더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재클린의 저주로 몰아갔고, 결국 재클린과의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는 못했다. (재클린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부부 관계악화의 원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

오나시스는 재클린과의 결혼 기간 동안 6개의 거주지를 소유하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맨해튼 방 15개짜리 5번가 아파트, 뉴저지 피팩-글래드스톤에 있는 말 농장, 파리에 있는 포흐 애비뉴 아파트, 아테네의 집, 그리고 그리스의 개인 섬 스코르피오스(Skorpios)을 사유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요트인 크리스티나 오(Christina O)는 딸의 이름으로 지어졌고 정치, 연예계, 왕족의 저명한 인사들을 접대했던 호화로운 수상 궁전이었다.

죽음과 유산

1973년 그리스 아테네 근처에서 오나시스의 아들 알렉산더는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아들은 잃은 슬픔으로 오나시스의 건강은 급격이 나빠졌고, 1975년 그의 나이 69세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게 된다. 오나시스는 아들 알렉산더와 함께 그리스의 스코르피오스 섬에 묻혔다. 오나시스의 유언에 따라 아들을 기리는 자선 재단을 설립했고, 재산의 45%를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 재산은 딸 크리스티나에게 맡겨졌다.
 
재클린 오나시스는 그리스인이 아닌 배우자가 상속받을 수 없다는 그리스 상속법으로 재산상속에 어려움을 겪지만, 테드 케네디(전남편의 막내 동생)의 도움으로 2600만 달러의 유산을 받아낸다.
오나시스의 딸 크리스티나도 그리 오래 살진 못한 것 같은데, 그녀의 재산은 외동딸인 아티나에게 넘어갔으며, 아티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라는 이름은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식, R=VD를 소개한다.
"Vivid생생하게 Dream꿈꾸면 Realization이루어진다"

오나시스는 독서를 즐겼는데 특히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R=VD 공식을 알게 되었고,
이 공식을 이용하여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또한 R=VD 공식을 부정적으로 사용한 것이 여자관계인데,
이 방식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쟁취할 수 있었다.
여자를 속물로 취급하긴 싫지만,
대부호(大富豪)를 이룬 뒤 만난 여자들이니
순수한 사랑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R=VD 공식은 끌어당김의 법칙과 일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 흥미유발이다.

색이 달라서 부록 2를 먼저 읽었는데,
이 구절이 맘에 와닿아 올려둔다.

"지금은 성공의 꿈을 꾸더라도
나중에는 성자의 꿈을 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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